3.1운동100주년 울산교육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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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g 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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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일반야학

1920년 이후 울산 곳곳에 야학이 만들어졌다. 공적인 지원이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야학을 유지하는 데도 돈이 필요했다. 

특히 야학에 오는 학생들은 가난한 살림형편으로 수업료가 없어 보통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아주 작은 수업료를 내거나 그 조차 없이 무료로 수강했다. 교사들도 무보수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다. 

 

무산야학 고난-일반 동정 기대 (1936년 4월 18일 동아일보 신문기사) 

 

배워야 산다! 는 표어는 우리의 항상 부르짖음이지만 이 배우려야 배울 수 없는 환경에 처하여 있는 무산아동을 위하여 울산군내만 하여도 수십 무산야학이 존재해 있다.

그 중에도 울산군 대현면에 있는 남화(南化)야학과 용연(龍淵)야학은 창립한지 불과 수년에 방금 각기 100여 명씩의 주야학생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전기 양 야학에는 현재 선생으로 있는 정정도와 박세복 양 씨는 그 동안 무보수로 오직 무산아동교육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왔으나 이 두 야학은 그 동안 경영에 있어서 사회에서는 하등의 도움을 받음이 없이 오직 몇 개인의 보조로 경영해내려 왔으므로 퍽 곤란하였다.

요새는 그것조차 절망케 되어 당장 교사문제로 300여 아동이 가두에 방황케 되리라는바 일반 부근 유지들은 무산아동의 교육을 위하여 궐기 동정을 기대할 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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