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육독립운동 100년의 빛

  • 교사
  • 탈퇴 회원
  • Aug 11, 2022
  • 526
  • 첨부 2

박제민 (1919~1943)

박제민 (1919~1943)

 

155117357.jpg

 

박제민 (1919~1943)

 

박제민 선생님은 울산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 출신으로 대구사범학교에 다니던 1940년 1월, 독립운동의 내용이 담긴 문예작품지 『반딧불』을 200부 발간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임굉·이태길·장세파 등 대구사범학교 학생들과 함께 민족의식 앙양과 독립을 위한 실력배양을 목적으로 교내 비밀결사 ‘문예부’를 결성했다. 그리고 1941년 1월, 대구사범학교 내부 비밀결사 ‘연구회’ 결성에 참여한 후 농업부 책임자로 활동했다. 

박제민이 참여한 비밀결사 연구회는 당시 국제정세를 살펴볼 때 일제가 곧 패망하리라는 것을 예견했다. 따라서 다가올 독립을 대비하며 회원들이 각기 전문 분야의 최고권위자가 될 것을 다짐했다.

1941년 3월, 사범학교 졸업 후 경주 하서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이 때도 학생 및 학부모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며 교사로서 항일운동을 펼쳤다. 1941년 여름, 대구사범학교 『반딧불』이  일본경찰의 손에 들어간 뒤 사범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비밀결사에 대한 수사가 벌어졌다. 이후 비밀결사 연구회의 전모가 발각된 후 박제민 선생님은 7월에 체포된다. 이후 일본경찰의 모진 고문을 겪었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고문후유증으로 옥사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제민 선생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제민2.jpg.jpeg

울산 울주군 언양읍 출신이다. 대구사범학교 비밀 항일결사단체 '연구회'의 농업부 책임자였다. 1941년 7월, 경주 하서국민학교(현 양남초) 재직 중 연구회가 발간한 문예지 <반딧불>이 드러나 경찰에 체포 됐다. 1943년 10월, 고문으로 대전형무소에서 순국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로그인 후 댓글을 쓸 수 있습니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