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일신학교(병영초등학교 전신)에 관한 신문기사
大韓每日申報, 1908.02.18. 日新學校 取旨書
今夫學校之令命이 各異而其隨時更張은 一也오 敎授之科目이 多端而其普通知識은 0也라. 故로 現之論新舊學之利害者或曰舊學者노 新學之根原이오 新學者노 舊學之啓蒙이니 非舊學이면 無以存本이오 非新學이면 無以硏究라 니 此今日敎育家之0大格論也라. 然則不可以此短彼오 亦不可以彼毁此니 今或株守舊學而力排新學者노 譬如旭日이 方升에 四隣이 鼓門커든 獨自擁衾吟呻曰此冥冥漆夜라 나니 此則無足論也어니와 又或專事新學而痛거 舊學者도 譬如拱杷桐梓을 剪其根幹 고 冀其枝葉之繁茂노니 其不得也必矣라. 二者相資 야 互爲表裏 야 取長棄短然後에 敎育之術이 可謂盡且備矣라 肆乃挽近以來爲로 皇勅이 申複 시고 繼之以朝訓 사 曉牖反覆 시니 凡臣者0 孰不惑興仰體乎이 玆以我候鄭海八氏가 下車以來로 注意人民敎育 야 與本面有志諸士로 詢謀僉同이 爭先捐助라 於是乎廢止私塾 고 創立0校 야 乃命名曰日新이라하니 日新之義는 擔責於我靑年학員之熱心進就야 滌其舊染고 吸新空氣하야 培養道德야 無有間斷이라야 庶幾上不라
朝家 盛意而亦負本校之名義夫 져
起人 李在琥 00壽
지금 학교의 명령(교칙)이 각각 다르지만 그 시대에 따라 사회적 정치적으로 부패한 제도를 바르게 고치는 것(更張)은 하나이다. 가르침의 과목이 대단히 다양하지만 그 보통 지식은 하나이다. 때문에 현재의 신학문과 구학문의 이롭과 해로움을 논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은 “구학문은 신학문의 근원이요 신학문은 구학문의 계몽이 되니 구학문이 아니면 근본을 보존할 수 없고, 신학문이 아니면 연구를 할 수가 없다.”하니 이것은 금일 교육가의 큰 격식있는 논의이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저것의 단점을 지적하는 것은 불가하고, 또한 저것으로써 이것을 헐뜯는 것은 불가하다. 지금 혹 구학문을 굳게 지키고서 힘을 다해 신학문을 배척하는 사람은 비유하자면 아침에 태양이 바야흐로(막) 솟아오를 때에 모든 이웃들이 문을 두드리지만(열지만) 자기 홀로 이불을 껴안고 끙끙거리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어둡고 어두운 암흑이다.”하니 이것은 의논할 가치도 없거니와 또한 오로지 신학문을 일삼아서 구학문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사람도 비유하자면 한 아름의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를 그 근본이 되는 줄기를 자르고 그 가지나 잎사귀가 무성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니 그것은 얻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두 가지가 서로 바탕이 되고 서로 안과 밖이 되어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린 후에야 교육의 기술이 다하고 완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방자함이 이에 가까운 것을 당겨서 오도록 하고 임금의 문서(조서)가 자주 오고 계속해서 조정의 가르침이 새벽 창문을 반복하니 모든 신하가 된 자는 누구인들 의혹이 되어서 몸을 들지 아니하겠는가? 이에 우리의 정해팔씨가 하차한 이래로 인민교육에 뜻을 두어 우리 면의 뜻있는 여러 선비들과 함께 의견을 모아 다투어 먼저 도움을 주었다. 이에 글방(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서당)이 폐지되고 학교를 창립하여 이에 이름을 일신이라 하니 일신의 뜻은 우리의 청년 학생들이 깊이 명심하고 진취할 것을 생각하여 그 묵은 떼(제도나 관습)를 씻고 새로운 공기를 마셔 도덕을 배양하여 끊어짐이 없게 책임지고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왕실의 뜻을 성대하게 하고 또한 본교의 명의(명예와 의리)를 감당(담당)하고자 하노라.
발기인 이재호 00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