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100주년 울산교육독립운동

일제강점기 수리조합 반대운동과 울산노동조합

수리조합 반대운동

 

울산의 수리조합 반대운동 일제하 울산지역에서도 1927년 이후 수리조합 반대운동이 조선인 지주와 농민들 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러면 먼저 1927년에 발생한 울산수리조합 반대운동을 살펴보자. (수리조합 반대운동에 대해서는 박수현, 1993, 「식민지시대 수리조합 반대운동」, 『중앙사론』7 참조)

 

1927년 1 0월 일본인 대지주 중곡덕일(中谷德一), 조선인대지주 이현보 등을 대표 위원으로 한 울산수리조합 창립위원 총회가 열렸다. 이들 대지주 특히 일본인 대지 주들이 수리조합 사업에 적극적이었던 까닭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가 대규 모 미간지나 열등지(劣等地)로서 토지개량이 시급했고, 여기에 일제가 수리조합 사 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에 따라 그 수익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일제시기 울산지역 대지주들에 관한 사항은 자료의 미비로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다.

 

참고로 일제시기 울산군에서 간행한 『울산안내』라는 책자에 의하면, 1913년 9 월 울산군 지주회가 창립되었다. 경상남도에서최초로 창립된 울산군 지주회의 회원 자격은 논 100두락(斗落) 이상 또는 논밭을 합해 150두락 이상의 대토지 소유자이 다. 1917년 현재 회원은 120명이었다. 수리조합사업은 처음부터 이들 대지주의 일방적인 주도로 진행되었다. 여기에 산 미증식계획의 목표 달성에 급급한 지방관리들이 대지주와 긴밀한 협조 아래 적극적 으로 조합 설치를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수리조합은 처음 설치될 때부터 강제성이 동반되었고, 지역 주민들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수리조합이 들어서면 수리조합이 필요치 않은 지역까지 강제로 조합구역에 편입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울산지역에서도 울산수리조합이 몽리구역으로 선정한 울산군내 울산·하상·농소면의 조선인 지주들은 맹렬히 수리조합 설치에 반대하였다. 조선인 지주들은 1927년 11월 20일 지주대회를 개최하고 수리조합의 창립은 유 해무익인 동시에 민(民)의 생활을 박탈할 것이라 하여 반대하였다. 이들은 관계 당국 에 반대 취지를 진정하고, 지주들에게 반대 날인을 받는 한편 지방 여론을 환기코자 지역사회운동단체인 울산 민우회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수리조합 반대위원회는 12 월 9일 울산부 이규명(李圭明)의 집에서 위원회를 개최하고, 수리조합 반대사무소를 설치하는 한편 상무위원 박주복(朴周馥), 최신줄(崔辛茁), 김문성(金文星) 등을선정 하여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울산노동조합

 

1929년 8월 1 8일 울산청년회관에서 울산노동조합이 창립되었다. 준비위원 김활 천의 사회로 열린 이날 대회에서 조합장 김활천, 간사 김상헌 외 9인의 임원이 선출 됐다. 울산노동조합은 당시 울산지역 최대 현안 문제였던 수리조합 공사와 공사장 인부들의 저임금 문제에 개입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 밖에도 1930년 1월에는 울산군 동면 노동자들이 노동단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노동조합을 창립코자 김영복(金永福) 등이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일제경찰 주재소에서 시국상의 이유를 들어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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