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100주년 울산교육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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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세빈

1893~1938

 

일제강점기 울산 동면지역의 항일운동에서 가장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은 성세빈이다. 지금도 사립 보성학교 졸업생들은 성세빈을 동면지역 최고의 선각자로 꼽고 있다. 또 일제강점기 언론 보도를 보면 성세빈을 社會師表로 칭하고 있다. 성세빈을 당시 사회에서 학식·덕행이 높아 남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세빈의 가계를 살펴보면 집안 전체가 항일운동에 뛰어들어 조국의 해방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가열 찬 활동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세빈을 비롯하여 동생인 성세륭도 청년운동과 신간회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었다. 그리고 성세빈은 재일조선인 노동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김천해의 사촌 매형이기도 하였으며,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서진문과 고종사촌이었다.

 

성세빈은 19193·1운동 직후 만주·상해·일본 등지를 돌아본 뒤 고향으로 돌아와 1920년 동구 일산진에 노동야학을 세워 교육을 통한 항일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때 세운 노동야학은 19225월에 사립 보성학교로 발전하여 이후 1945년까지 499여 명에 이르는 많은 학생들을 배출하였다. 성세빈은 사립 보성학교의 교장을 역임하면서 민족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항일 및 독립정신을 심어주는 한편 문맹퇴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성세빈의 활동은 단순히 민족·항일 교육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실천 활동에서도 타의 모범이 되었다. 1920년 지역에 동면청년회를 구성해서 직접 청년운동을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활동 범위를 군단위·전국단위로 넓혀나갔는데, 192510월 이후 울산지역 청년운동 단체들의 연합체인 울산군청년연맹 집행위원과 검사위원, 또 전국적 사상단체였던 정우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이후에는 동면지역 청년단체인 5월청년동맹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28년 신간회 울산지회 설립 이후에는 신간회 울산지회의 집행위원과 검사위원장 그리고 신간회 본부 대표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성세빈의 활동은 민족교육운동과 청년운동, 신간회 운동 등에서 울산을 비롯한 전국 단위에서도 눈부신 것이었다. 이러한 활동의 근거지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사립 보성학교였다. 보성학교는 당시 동구지역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다. 동면청년회동면구락부5월청년동맹울산청년동맹 동면지부로 이어지는 항일청년운동과 동면소년회적호소년회울산소년동맹 동면지부로 이어지는 항일소년운동, 그리고 민족협동전선운동인 신간회의 울산지회 동면지부의 사무실이 바로 보성학교였다. 보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들은 물론이고 졸업생들도 전부 이러한 단체에 소속되어 치열한 항일운동을 펼쳤는데,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성세빈이 있었다. 즉 성세빈은 1920년대 동면지역 항일운동을 위한 일관된 조직체계 즉 소년운동-청년운동-신간회운동으로 이어지는 항일운동을 지역사회에 구축하였다. 이 결과 성세빈은 동면지역을 넘어서서 전울산지역에서도 대표적인 항일운동가로 손꼽혔으며 또한 전국 차원의 활동도 활발히 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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