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100주년 울산교육독립운동

이무종.jpg

 

 

이무종

1893.05.~1956.09

 

이무종은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가 고향으로, 서울의 휘문의숙을 1917년 제8회로 졸업하였다. 1919년 서울의 3.1만세운동의 현장에 참여한 천도교 언양교구장 김교경의 지시를 받은 언양 천도교인들은 몇 차례에 걸쳐 회합을 가지며 42일 언양 장날을 이용한 독립만세운동을 결의 추진하였다. 그중 휘문의숙 동문인 이규장과 이무종이 총책을 맡았다. 상북면 후리 이무종의 사랑방이 본부로 사용되었다.

331일 천도교도 최해규 형제와 곽해진, 유철순 등이 일제에 예비 검속되었지만 계획을 강행하기로 결심하고, 41일 이규인의 집에서 이규인, 최윤봉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태극기 42매를 제작하였다. 42일 언양읍 남부리 장터에 나아가 그곳에 모인 1천여 명의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시위행진 하였다. 이 일로 체포되어 56일 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의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천도교인 김교경, 이규천 등과 지역 유지 대표 등이 근대 교육을 통한 민중계몽과 3·1운동 이후 천도교단 조직 재정비를 목적으로 일제 당국과 교섭하여 사설학습강습소로 개설하였다. 장소는 3·1운동으로 폐쇄당한 상남면 거리의 천도교 회관이었는데, 1921310평 남짓한 교실 2칸과 관리실 1칸으로 양정학원의 현판을 걸었다. 당시 양정학원의 운영은 이규천이 맡았고, 교사는 이무종, 이규장이었다.

양정학원은 지역 유지의 기부금과 이자 그리고 약간의 수업료로 80여 명의 학생을 가르쳤는데, 학제는 4년제 보통학교 과정이었다. 19275월 길천공립보통학교가 개교되기 전까지 6년간 서당교육을 마친 청소년들에게 산술, 역사, 조선어, 지리와 한문 등을 가르쳤다.

이무종은 양정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민족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44월 의식계발, 계급타파, 노동본위의 강령을 내건 상남, 하북 양면을 아우르는 시대청년회 집행위원, 19292월 언양지방 노동야학연합회 총무, 19304월 신간회 울산지회 언양분회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상북면 거리 마을 정자나무 아래(107-2번지)에는 이 학원 출신의 학생들이 세운 양정학원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이규장, 이무종 선생이 후학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준 높은 뜻을 기리고자 1985년에 세웠다. 유허비 길 아래쪽에 있었던 옛 양정학원의 터는 현재 논으로 바뀌었다. 1990년에 대한민국 정부는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KakaoTalk_20190513_220629838.png

 

 

목록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