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100주년 울산교육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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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1913.07. ~ 2010.08.

 

이효정은 1913년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태어났다. 친가와 외가 모두 의병항쟁부터 해방 직전까지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이 많았다. 친가의 이동하(종조부), 이동한(종조부), 이병희(고모)가 국가유공자며 항일시인 이육사도 친척 어른이 된다.

이효정은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조응한 경성만세운동에 참가했고, 1930년 경성여자만세운동을 학교 내에서 주도하다 체포를 당하였다. 3학년 때인 1931년에는 학교 내에서 동맹휴업을 주도해 무기정학을 받았으며, 경성RS독서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1932년 무산아동 교육에 나서보라는 동덕여고보 스승 이관술의 추천으로 울산에 내려와 교사를 했다. 일산동의 민족 사립학교였던 보성학교에서 교사를 할 때 일경에 의해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불온한 교육을 한다는 이유로 퇴직을 강요받았다.

1933년 서울에 올라와 광성학원 등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적색노조와 관련을 맺게 되었다. 그러다 19339월 종연방직 제사공장의 파업 투쟁을 지도했다는 명목으로 다시 구속되었다. 193511, 경성에서 이재유 등이 주도하한 경성트로이카에 가담했다가 검거돼 약 13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이효정은 고문 후유증으로 치료를 받다가 경남적색교원노조사건으로 2년간 투옥되었던 울산의 항일운동가 박두복과 혼인해 동구 일산동에서 거주하였다. 이후 시종조부인 박학규 등의 비밀활동을 도우면서, 1944년에 전국적인 비밀결사조직인 건국동맹의 연락망을 맡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태화국민학교(현 울산초등학교 전신) 교사로 근무하며 부녀동맹 등의 활동을 병행하였다. 하지만 1948년 남편 박두복이 서울로 상경해 남로당 활동을 하다 수감되면서 온 가족(21)이 울산을 떠나 친가 어른들이 있는 대구로 이주하였다.

한국전쟁이 나면서 남편과는 이별을 하게 되었는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박두복이 풀려나 월북하면서 모든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이 후 경찰의 요시찰인물이 돼 이효정은 수시로 사찰 기관에 연행되거나, 고문 취조를 당하였다. 노년에 이효정은 시집 回想(도서출판 경남, 1989)여든을 살면서(도서출판 경남, 1995)를 출간하면서 문학인으로 지냈다. 그러다 2006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면서 선생은 93세에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어 건국포장을 받았다. 2010814일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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