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100주년 울산교육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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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진

1897.07. ~ 1952.09.

 

조형진은 진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1917년 울산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재직했다. 19193.1운동 이후 울산 각지에서 사립학교를 비롯한 야학 설립운동이 펼쳐질 때 사립 대흥학교의 교장으로 봉직하였다. 이 학교는 1921년 울산군 대현면 남화리(192-1번지)에 김원태가 설립하였는데, 학생들은 한학을 미리 수학한 20세 전후의 청년들이었으며, 40~50명이 다녔다고 한다. 한복 두루막 차림에 짚신을 신었으면서도 축구를 즐겨 했으며, 192554일에 대현공립보통학교가 설립 인가되면서 병합 폐교되었다.

한편 조형진은 19229월경 북경으로 유학을 했고, 유학 중에 중국 내 독립운동 세력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1923년 국내로 돌아온 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자, 지국장을 역임하면서 청년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23년 울산소작인회, 1925년 울산성우회, 11월 울산군청년연맹 집행위원, 1926년 울산기자단 집행위원, 전국 사상단체인 정우회 참여, 19275월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에 울산자오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192710월 울산군 방어진에서 열린 울산사회단체간담회에서 울산청년동맹을 조직할 창립 준비위원으로 선출되어 울산청년동맹의 강령과 정책 등을 세웠다. 동시에 11월부터 신간회 울산지회를 설립하기 위한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516일 울산청년동맹 창립총회에서 배포한 인쇄물을 빌미로 조형진은 강철(강대곤), 권우락과 함께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303월 신간회 울산지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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