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100주년 울산교육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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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문(徐鎭文) 1901년 82819281117.

일제 강점기 교육운동과 노동운동가.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본적은 경상남도 울산(蔚山) 동면(東面) 일본으로 가 독립운동을 할 당시 주소는 일본 신내천현(神奈川縣) 횡빈시(橫浜市) 중구(中區) 본목기륜(本牧箕輪)이다. 부친은 서원준(徐元竣)이고, 모친은 성감동(成甘同)이며, 생부 서장식(徐章寔)과 생모 유남연(柳南蓮) 사이에서 5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은 윤상필(尹相必)이다.

 

울산 병영공립보통학교(兵營公立普通學校)에서 재학하다가 전학 간 동면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외사촌(外四寸) 성세빈(成世斌)이 설립한 일산사립보통학교(日山私立普通學校)에서 교직생활을 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192391일 일본에서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이 일어났을 때, 일제가 퍼트린 거짓소문으로 인해 조선인들에게 분노를 가진 일본인들이 휘두른 곡괭이에 목덜미를 찍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귀국하였다. 이때 보성학교에서 여성야학교사를 맡아 여성교육에 이바지 했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1926년 신내천현 조선협동조합 횡빈지부 회원이 되어 조선인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을 위한 노동운동에 힘썼다. 1927년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281025일 일본 천황 즉위식을 앞두고 진행된 예비검속에서 구속된다.  일본경찰이 씌운 죄명은 일본왕 히로히토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중재모사건이었다. 이 때 이성백(李成百)김천해(金天海)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1116일에 저녁 풀려났으나 다음알 17일 바로 사망하고 말았다. 1121일 일본조선노동조합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을 때 수백 명이 참가하였다.

 

2006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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