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100주년 울산교육독립운동

일제강점기 가장 큰 규모의 항일단체 - 신간회울산지부

1927년 당시 민족해방운동의 새로운 전환을 위해 전국적으로 설립되고 있던 신간회 지회 창립에 부응하여 울산지역 사회운동가들은 조형진, 양봉근 등의 주도로 1927년 11월 23일 신간회 울산지회 창립을 위한 발기회를 열었다.

 

이들은 신간회 본회 규약상 지회 회원이 30인 이상인 립 요건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임시의장 양봉근의 사회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12월 12일 울산청년회관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지회 설립을 준비하기 위한 준비위원으로는 조형진(曹亨珍), 양봉근(楊奉根), 박주복 (朴周馥), 이종필(李鍾弼), 이규명(李圭明), 박문한(朴文翰), 이종화(李鍾◯), 권우락 (權又洛), 강철(姜徹), 신종기(辛鍾驥), 안영두(安泳枓), 김활천(金活天), 박병호(朴秉鎬) 등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1927년 12월 13일 창립대회를 열 예정이던 신간회 울산지회는 일제 울산 경찰서의 금지로 돌연 연기되었다. 사실 울산지역 사회운동가들은 12월 12일 그동안 분열되었던 울산지역의 청년운동을 통일하여 울산청년동맹 창립대회를 열고, 다음날인 13일에는 신간회 울산지회 창립대회를 열어 그 동안 침체상태에 있던 울산지역 사회운동의 부흥을 기도하였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신간회 울산지회 발기회에서는 준비위원들이 울산군 내 각 마을을 순회하면서 회원 모집에 진력하여 입회한 인원이 300여 명에 달하였다. 일제경찰이 양 대회의 집회를 금지시킨 이유는 금지된 불온한 취지서의 내용을 그대로 선전하여 다수의 회원을 모집한 불온한 동기에 있다고 했다. 그 불온은 근본적으로는 울산지역 사회운동이 커지고 항일운동으로 나갈 것을 두려워 한 것으로 부당한 탄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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