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100주년 울산교육독립운동

울산의 소년운동

 

 

3.1만세운동에_참여한_어린_소년을_붙잡는_일본_헌병_경찰.jpg

 

 

일제강점기 울산의 소년운동은 기개가 남달랐습니다.  1920년부터 실력양성 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소년회 조직이 활발하게 진행됩니다. 1921년 울산천도교소년회, 불교소년회 기독교소년회 처럼 종교와 연관된 소년단체가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항일과 독립운동의 성격이 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1923년 언양지역의 소년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면서 변화가 생깁니다. 언양읍과 중남면, 삼동면에 잇달아 소년회 또는 소년단이란 이름으로 소년운동이 구성됩니다. 

울산읍내에서 펼친 주요 사업 중에는 1925년 7월 15일부터 3일간 전국의 소년(어린이) 운동을 이끌어 온 방정환, 정순철 등을 초빙하여 다채로운 생사를 개최했습니다. 1926년엔 울산청년회관에서 울산소년회 창립 발기총회를 갖고 14일에 창립을 합니다.  (울산정책연구소 울산의 독립운동사』  2008)

 

울산소년단체 회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사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언양 소년회의 김동하  1928년 언양공립보통학교(현 언양초) 6학년으로 대한독립의 뜻을 담아 격문을 써 일경 주재소에 붙이고 태극기를 학교에 그려가 치안유지법 위반 죄목으로 징역 1년의 옥고를 당했습니다. 이때 소년단의 간부였던 이동개(이동계 당시 19세)도 함께 구속됐습니다. 검사는 김동하에게 "비록 나이는 어리나 그 의식이 장래 조선민족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확실한 신념을 세운 것이기에 일본 국체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징역 1년 구형했습니다. 

그리고 1930년 1월 28일에도 울산경찰서 형사대가 언양주재소로 긴급 출동해 언양소년회 간부와 회원 8명을 검거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는 광주학생독립운동과 연관된 움직임 미리 차단할 목적이었습니다. 1935년 일산동의 보성학교 학생 정진도, 김두영, 최도준 등이  검거된 사건도 있습니다. 이들은 적호소년회 회원으로 일본인들이 장악한 수탈의 핵심지였던 방어진에 전신주와 주요 장소마다 격문을 붙인 이른바 울산적색비사사건으로 구속돼 옥고를 겪게 됩니다. 

 

(이현호 부산대석사논문 1920~30년대 울산 동면 지역의 사회운동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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