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육독립운동 100년의 빛

항일운동에 앞장선 언양 남문길 아이들

 

 

언양공립보통학교(, 언양초)1913년부터 언양현 동헌 객사 터 옆에 개교하였다. 학교 앞은 바로 영화루였다. 그 앞의 남문 4길은 언양읍성 마을 길이다. 현재 골목길에는 읍성과 사람 그리고 마을의 역사를 그림과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길은 언양읍성이 생긴 이래 수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으로 걸었던 사람이 있었다. 이 골목길이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을 하였던 언양 어린이들의 놀이터이자 삶터였고 독립운동의 길이다.

 

191942일 언양에서 천도교인이 중심이 된 항일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언양공립보통학교에서 200미터도 되지 않는 언양 시장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학생들도 참여하였지만, 명단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9203월 졸업생이 그 이전 해보다 25명이나 적었다는 사실은 어떤 숨은 사연이 있음이 분명하다. 아이들은 영화루 앞 남문길을 드나들며 등하교하였다. 신영업, 신학업은 훗날 대한교과서를 만든 김기오와 함께 언양 청년회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1923년 언양 소년단이 결성되었다. 신말찬, 신시돌, 신근수, 정복순, 오영수, 오호근, 배기철 등은 아침 달리기, 소인극 활동, 가극대회, 체육대회, 웅변대회, 야학, 강연회 등 계몽 활동을 통해 항일민족 의식을 높여 나갔다. 신말찬과 오영수는 동요, 동시를 발표하였다.

192710월 일본인이 조선인을 구타하여 사망하게 한 가리야 사건으로 언양지역은 항일 반일 감정이 높았으며 일본 상품 불매운동도 하였다. 소년단 간부 이동계는 조선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독립하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 소년단원은 단결하여 조선독립 사상을 선전하고 일본인은 조선인을 압박하니 일본인의 상품을 사지 말고 일본인을 고통스럽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192812월 언양 소년단의 김동하(6학년)가 언양 주재소에 대한독립 만세문서를 부착하여 간부 이동계와 함께 체포되었다. 김동하는 만국기를 그리라 하면 태극기를 그리는 학생이었다. 일본인 검사는 나이는 어리지만, 그 의식은 장래 무엇을 목적하는 확실한 신념을 가졌다.”하여 징역 1년을 구형하였다. 192912월에 징역 8개월을 살고 나온 이동계를 환영하며, 언양 소년단원 100여 명은 비를 맞으면서 소년회가를 높이 부르며 소년회관까지 행진하였다.

 

192911월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항일투쟁은 전 민족적인 독립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 영향을 받은 언양 소년단원 오호근(소설가 오영수의 동생)이 언양 주재소 부근에 격문을 뿌려 체포되어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19325월 다시 언양에 격문이 뿌려져 홍정수가 체포된다. 1930년대에 신학영, 신학업, 이동계 등은 소작농의 권리 옹호를 위한 농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울산과 양산에까지 사회활동을 넓히며 항일 독립운동을 하였다. 두서 출신의 배기철은 양산 통도중학교에서 배일 민족교육으로 고초를 겪고 해방 후 제헌 국회의원 김수선과 농지개혁에 앞장섰다.

 

영화루 성 안쪽 2층집은 오영수, 오호근의 집터이다. 영화루 앞 잔디 광장 왼쪽 끝 공간이 정인섭과 신고송의 삶터이다. 같은 집 윗채는 부자인 정인섭, 아래채는 가난한 신말찬이 살았다. 민속학자, 영문학자. 어린이 운동가였지만 학도병 참전을 권유한 친일 부왜인 정인섭과 달리 신고송은 일제에 항거하며 어린이 운동과 소인극 등 항일 문학활동을 하다가 감옥을 갔다. 바로 그 집 앞쪽에는 언양 소년회 사건으로 투옥된 이동계가 살았다. ‘읍성작은도서관왼쪽 옆집이 언양, 양산의 청년운동과 농민운동에 앞장 선 신영업과 신학업 형제의 집이 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고, “대한독립만세벽보를 붙이고 격문을 뿌렸던 아이들은 성장하여 소작농민을 위한 농민운동가로, 사회활동을 하며 울산과 양산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며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언양 남문 4길의 사람을 묶어준 언양청년회 활동의 중심에 우석 김기오가 있었다. 그는 현대문학을 창간하여 오영수가 문학 활동을 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 인연은 1920년대 언양 소년단이었다. 오영수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이 남문길을 대한독립만세격문을 뿌리며 달음박질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소년단 아이들이 아침 나팔소리를 듣고 일어나 달리기를 하니 소파 방정환이 격려의 박수를 한다. 선배와 후배가 함께 어깨동무하며 달려간다. 신영업(2), 신학업(3) 그리고 김기오가 앞장서고 뒤이어 신근수(8), 신말찬(10), 신시돌(10), 오영수(11), 이동계, 김수선(12), 배기철(13), 오호근(14), 김동하, 이순금(14), 홍정수 등이 소년회가를 높이 부르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어깨동무하며 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언양초등학교 졸업생들은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는 존재한다. 잊혀진 역사를 복원하여 오늘에 되살리지 않으면 우린 언제 다시 굴종의 나라가 될지 모른다. 자주의 나라가 되는 길은 절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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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1931년 언양 어린이날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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