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육독립운동 100년의 빛

1928년과 1930년 언양 만세격문사건

 

192812월 언양보통학교 6학년 김동하와 졸업생 이동개가 일제경찰서 게시판에 조선독립만세격문을 붙여 체포됐다. 그리고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동참하고자

1930128일 아침, 오호근을 비롯한 언양소년단원 8명이 언양 일대에 독립만세 격문을 뿌린 혐의로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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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소년단 만세문 사건

 

1928년 이동개, 김동하 체포

 

192812월 중순 언양소년단 간부였던 이동개(당시 18)와 회원 김동하(당시 16)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울산경찰서에 검거됐다. 이동개는 언양보통학교 졸업생이었고 김동하는 6학년 학생이었다. 두 사람은 언양소년단 활동에 적극적이었는데 이동개는 언양청년동맹회원이기도 했했는데 소년단을 간부를 맡아 독립사상을 전하는데 앞장섰다. 김동하는 언양소년단에서 독립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심이 커졌고 언양보통학교에서 만국기를 그려오라는 말을 듣고 태극기를 그려갈 만큼 적극적이었다김동하는 128일 자신의 집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적은 벽보를 만들었고, 11일 언양주재소(일제시대 파출소) 앞 게시판에 붙였다. 일제 경찰은 두 명을 체포한 후 부산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일제 검찰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으로 엄중한 처분을 가해야 한다며 보안법 7조를 적용해 각각 징역 1년을 구형했다.

 

1930년 오호근과 8명의 소년단원 체포

 

1929113일 광주에서 시작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전국으로 번져 1년 넘게 계속됐다. 학생독립운동 물결은 언양에도 이어졌고 준비기간을 거쳐 19301월 언양소년단이 만세격문을 준비해 거리에 뿌리게 된다128일 언양주재소로 울산경찰서 서장 이하 형사대가 급거 출동해 언양소년회 간부 오호근(당시 18)의 집과 소년회관을 수색한 뒤 회원 8명과 함께 검거했다. 이유는 그 날 아침 주재소 부군에 조선독립만세등의 내용을 남은 격문을 뿌렸다는 것이었다. 일제 경찰은 오호근을 혹독한 취조를 거쳐 부산지방법원 검사국으로 넘기고 나머지 회원들은 석방했다오호근은 3111심 재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고 이후 항소해 412심법원에서 징역8개월, 집행유에 5년을 선고받아 출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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