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육독립운동 100년의 빛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언양공립보통학교

1906년 언양청년회가 창설한 사립영명학교에서 출발한 언양공립보통학교(현, 언양초)는 1913년 언양현 동헌 객사 터 옆에 개교하였다. 졸업생들은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1919년 언양 만세운동 이후 신영업(2회), 신학업(3회) 등은 언양 청년회 활동을 하며, 1923년 언양 소년단을 결성하여 아침 달리기, 소인극 활동, 가극대회, 체육대회, 웅변대회, 야학, 강연회 등 계몽 활동을 통해 항일민족 의식을 높여 나갔다. 신말찬(10회), 오영수(11회)는 동요와 동시를 발표하였다. 1927년 10월 일본인이 조선인을 구타하여 사망하게 한 ‘가리야 사건’으로 언양지역은 항일 반일 감정이 높았으며 일본 상품 불매운동도 하였다. 1928년 12월 언양소년단의 김동하(6학년)가 언양 주재소에 “대한독립 만세” 문서를 부착하여 간부 이동계와 함께 체포되어 징역 8개월을 살았다. 1929년 11월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항일투쟁은 전 민족적인 독립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 영향을 받은 언양 소년단원 오호근(14회, 소설가 오영수의 동생)이 언양 주재소 부근에 격문을 뿌려 체포되어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1932년 5월 다시 언양에 격문이 뿌려져 홍정수가 체포된다. 1930년대에 신학영, 신학업, 이동계 등은 소작농의 권리 옹호를 위한 농민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울산과 양산에까지 사회활동을 넓히며 항일 독립운동을 하였다. 또 배기철(13회)은 양산 통도중학교에서 배일 민족교육으로 고초를 겪고 해방 후 제헌국회의원 김수선(12회)과 농지개혁에 앞장섰다. 개교 100년이 넘는 언양초등학교는 일제강점기 항일 배일운동의 인재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Gallery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작게는 광주전남 지역의 학생들이 일제의 폭...
Gallery
항일운동에 앞장선 언양 남문길 아이들 언양공립보통학교(현, 언양초)가 1913년부터 언...
Gallery
감옥에서 풀려난 이동개와 행진하는 언양소년단 언양 만세격문사건으로 1년 동안 부산 ...
Gallery
1928년과 1930년 언양 만세격문사건 1928년 12월 언양보통학교 6학년 김동하와 졸업생 ...
Gallery
'어린이'이란 말을 세상에 꺼냈던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1926년 언양에 강연...

울산교육 역사현장: 언양초등학교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