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육독립운동 100년의 빛

문서자료  l 

ulsan-04.jpg

 

울산 야학 교사는 대부분 보통학교나 사립학교를 졸업한 이들로 근대교육을 앞서 받은 이들이다. 

3.1만세운동을 거치며 만들어진 청년단체에 속해 활동하는 등 항일운동과 사회운동에 앞장선 이들이 주도했다. 

교사 대부분이 무보수로 일했으며, 문맹을 퇴치하고 민중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울산교육청이 '울산교육 독립운동가'로 호명한 안태로 선생님이다.  

 

이 글에서는 야학운동과 관련해 잘알려지지 않은 두 명의 독립운동가를 새롭게 소개한다. 

병영의 강철과 언양의 신학업으로 모두 해당 지역의 청년운동과 독립운동을 대표할 뿐 아니라

신간회 울산지회 활동을 비롯해 울산지역 항일운동을 이끄는 핵심 인물들이다. 

하지만 다른 독립운동 활동이 두드러져 야학운동에 힘을 쏟았던 것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강철과 신학업 사례에서 보듯 일제강점기 울산 속 독립운동가들은 교육에 대한 애정이 컸음을 알 수 있다. 

 

 

강철(姜徹, 본명 : 강대곤姜大鵾, 1899114~ ?)

 

주소 양산군 하북면 순지동 11, 부친 강윤수의 5.

한문사숙 다니다 1913625일 언양공립보통학교 2학년으로 입학, 19163월 언양공립보통학교(4년제) 2회 졸업.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중등학교 재학 중 3.1운동을 맞이하여 중국 상해를 왕래하며 활동, 19242월 귀국할 때까지 일본에서 울산 동면 방어진 출신 김천해와 같이 동경조선노동동맹회에서 활동.

귀국 후 19255월 병영청년회관 설계위원, 울산군청년연맹 집행위원(1925. 6), 경남도청년연맹 검사원(1925. 11) 등 현 중구 병영에 기반을 두었던 병영청년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함. 그리고 사상운동 단체인 울산 성우회 집행위원(1925. 5), 울산 자오회 집행위원(1926. 4), 전국단위인 정우회 집행위원(1926. 9)으로 성세빈과 함께 활동함. 이 조직들은 당시 울산의 민족운동 주도권을 놓고 울산청년회(서울파 계열)와 경쟁을 펼쳤던 북풍파 계열이었음. 한편 동아일보 울산지국 기자(1925. 9)를 시작으로, 시대일보 지국장 대리(1926. 2), 울산지역 언론인 모임인 울산기자단 집행위원(1926. 7), 경동기자동맹 집행위원(1926~1928) 등의 언론 활동도 병행함.

19266.10만세운동 이후 본격화된 민족협동전선운동(=민족유일당운동) 차원의 울산 지역 민족운동 통합은 전울산 사회단체 간담회’(1927. 10)에서 시작됨. 교섭위원으로 뽑힌 강철은 이후 신간회 울산지회 설립준비위원(1928. 3), 울산청년동맹 창립준비위원(1928. 5)으로 맹활약 중 19287월 치안유지법, 보안법, 출판법 위반으로 조형진, 권우락과 함께 체포됨. 1심에서 징역 2(1929. 5), 2심에서 벌금 50원으로 감형되어 출옥(1929. 11). 이후 울산 신간회원, 중외일보 울산지국 기자(1930. 5), 조선중앙일보 언양지국 기자(1933. 3) 등으로 활동함. 1937725일 동아일보 울산지방 소개판 특집 기사에 계몽기 울산문화운동 선상에서 중심인물은 이종천·강철·성세빈·신학업·조형진 등 제씨이었다.’고 언급함. 해방 후 울산군 농민조합장을 지냄.

1930년경 편집된 일제 자료 중 노동자교양기관일람표에 병영노동야학교에 대한 기록이 있음. 경영자는 병영청년회, 창설일자는 19224, 장소는 울산군 하상면, 수업연한은 4, 과목은 보통학교 교과서 및 노동 소작 문제 등을 지도함, 인원 약 100, 유지방법은 월사금 및 경영자의 부담. 이 자료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강사로 강철 외 3명을 언급하면서, 비고란에 병영노동야학을 순 노동사상투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

일제는 19298월경 병영노동야학을 계통이 틀린 학교’, ‘불온한 강사가 있어 어린 아동들에게 사상을 가리킨다는 등의 이유로 폐쇄를 강요함. 이때가 바로 강철이 울산청년동맹사건으로 2심 재판을 받고 있던 중이었음. 하지만 병영노동야학은 일제의 탄압을 뚫고 이후에도 계속 유지됨. 이에 일제는 19317월 또 다시 폐쇄 명령으로 탄압을 가함. 병영노동야학은 결국 강사를 현지 병영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대체하며 1933년까지 명맥을 유지함이 확인됨.

 

 

 신학업(申學業申周極申周植, 1901~1975)

 

102346_11698_2323.jpg

 

 

일제강점기 언양과 울산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회운동을 한 사람을 거론한다면 신학업(申學業, 申周極, 申周植, 1901~1975)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다. 신학업은 언양읍 서부리 165번지에 출생하였다. 편모슬하에 42녀 중 셋째 아들이다. 같이 사회운동을 한 둘째형이 신영업이다.

1917년 언양공립보통학교(3)를 졸업하고, 19181월 도쿄 게이오대학(慶應大學) 상과 야학부에 입학하였으나, 19192.8독립선언 관련 활동으로 퇴학당했다. 이때부터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이 있었다. 191910월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 울산군 담당 조사원(調査員)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1920년대 귀국하여 언양청년회를 중심으로 신문화 보급을 통한 계몽운동을 하였다. 1923930일 언양청년회에서 노동야학을 개설하였다. 당시 50여 명의 학생 참가하고 정인목정인섭 형제와 함께 연사로 활동하였다. 또 언양소년회를 창립하여 어린이 운동에 적극 나섰다. 이때 신말찬(신고송), 오영수, 이동개, 김동하가 활동을 한다. 동아일보 울산지구 기자와 언양 주재 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신학업은 1920년대 중반부터는 농민운동에 매진을 한다. 울산소작인회, 남부농민회, 언양농민조합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소작권 이동반대, 소작료 4할제 실시, 지세 지주 부담 등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한 무산자 동맹을 결성하였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신간회 활동을 하며 사회운동의 범위를 언양, 울산에서 양산에까지 넓힌다. 그러던 중 192846일 언양에서 언양기생조합 설립 반대회를 조직 활동하다가 집행유예 1, 벌금 50원을 선고받았다. 19305월 근우회 울산지회에서 활동하게 되는 김수봉과 결혼한다.

1930년대에 농민운동을 통한 사회변혁 운동에 앞장을 선다. 양산의 청년 농민 운동가였던 전병건과 같이 조선공산당 재건을 획책하였다. 1932년 양산농민조합의 조합원 구출을 위한 두 차례의 양산경찰서 습격 사건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경남적색농민조합건설 동부위원회 울주군의 책임자였던 신학업의 정체가 노출되었다. 결국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전병건은 징역 4, 신학업은 징역 2년을 받았다. 이 사건의 여파로 19332월까지 경남일대에 산재한 양산, 김해, 언양, 의령 등 유력한 노농조합들은 대탄압을 받고 해체되었다. 신주극은 193559일 만기 출소한다. 이후 해방까지 큰 활동이 없다가 해방 후 거창군인민위원장으로 활동하다 미군정에 의해 체포되기도 했다. 신학업은 1975년 사망하였고, 20108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신학업의 인물평에 대해 왜경은 53(160cm), 얼굴이 가늘고 긴 편임. 코가 많이 높고 마른 편임. 정치를 논의하고 배일사상이 치열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출입하면서 타인을 사주 선동하여 그 언동이 위험할 우려가 있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937725일 동아일보 특집 기사에서 임수길 기자는 특집 서문에 계몽기 울산문화운동의 이면에는 강철·성세빈·신학업·조형진이 있었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목록
제목 날짜
근대이행기 울산 병영의 사회변동과 지역정체성 2019.03.14
병영의 삼일운동 전개 2019.03.02
울산야학 관련 일제강점기 신문기사 모음   2019.08.13
야학에 힘쓴 독립운동가 - 강철과 신학업   2019.08.13
일제강점기 울산 야학탄압 사례   2019.08.13
야학 수업과목과 교재   2019.08.13
일제강점기 울산야학과 민중교육   2019.08.13
일제강점기 울산 사설강습소와 사립학교   2019.08.13
일제강점기 울산 일반야학과 여성야학   2019.08.13
일제강점기 울산 노동야학 일람표   2019.08.13
이무종 - 일제강점기 신문기사와 법원판결문   2019.05.15
안태로의 교육활동 언론기사   2019.05.15
독립운동가 부부 이효정과 박두복   2019.05.15
조형진 판결문 (1929년 11월 16일 치안유지법위반 등 대구복심복원)   2019.05.15
일제강점기 성세빈의 민족운동   2019.05.15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 병영시위   2019.03.14
병영 만세시위에 대해 1919년 경상남도 장관이 총독에게 보고한 내용   2019.03.14
삼일 충혼비-삼일사 앞   2019.03.02
옛 일신학교(병영초등학교 전신)에 관한 신문기사   2019.02.22
일제강점기 교육상황 발췌자료 - 제4장 식민지 노예교육   2019.02.21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