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육독립운동 100년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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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1929년부터 일제의 야학 탄압이 본격화 됐다. 신간회가 1929218일 울산노동야학연합회 창립대회를 개최하려고 하자 일제는 이를 불허한다. 총독부의 교육 방침에 위배된다는 것과 집회가 불온하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같은 해 8월에는 병영노동야학을 금지시킨다. 이유는 불온한 강사가 있어 어린 아동들에게 사상을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즉 병영청년회의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 목적도 포함했다. 그리고 1931년에는 언양농민조합이 운영한 농민야학에 폐쇄명령을 내렸다. 1929년 동면 일산리의 보성학교에 대한 폐쇄 명령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모두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선 청년들이 교육을 통해 민족과 민중을 일깨우는 것을 두려워해 직접 탄압한 것이다. 결국 1929100여개에 달했던 야학은 1937년에 이르면 20여개 소 1,000여 명의 학생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민중교육기관이었던 야학을 관제야학으로 변질시키려 애섰다.   

 

1929219일 일제경찰 울산노동야학연합회 창립대회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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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9월 병영노동야학 폐쇄 / 19317월 병영야학도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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