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육독립운동 100년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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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로의 교육활동을 칭송하는 언론 기사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울산청년회관내 학술강습소는 울산 교육계에 20여 년이란 오랜 역사를 가젓스며 더욱이 동 강습소의 안태로 선생은 60 노인으로 설립 이래 교편을 잡아 무산 아동의 자부라고 울산 사회의 칭송이 자못 높거니와 동 강습소는 년년 지원 아동이늘어가고 잇슬 뿐더러 내용에 잇서서도 점점 충실해가고 잇습을 딸아 동 강습소로 하야금 주학부 설치 요망이 놉흠을 알게 된 울산양조회사에서는 과거에 동 강습소를 위하야 막대한 물질의 히시가 잇슴에도 불구하고 단연 매년 1천원의 경비를 독담케 되야 목하 당국에 인가 신청 중에 잇서 곳 실현을 보게 되리라는바 이로써 울산 무산아동의 열망 중에 있던 울산학습강습소 주학부(晝學部) 설치 문제는 실현의 서광을 보게 되앗다고 한다.”

 

<동아일보, 울산학술강습 주학설치, 1937. 9. 8>

 

 

육십이 지나도록 반평생을 빈곤 아동교육에 바친 교육가 울산읍 북정 일각에 솟아 있는 울산청년회관은 현재 울산 빈곤 아동교육계에 거대한 임무를 꾸준히 계속하야 오는 울산야학교다.(학술강습소는 작년 9월부터 개칭되엇다) 울산야학교와 선생 안태로(63) 씨라 하면 울산교육계에 너무나 뚜렷한 존재로 우리로 영원히 잊을수 없는 은인이다. 하나 세상이란 냉혹한 것이다. 안태로 씨가 빈곤 아동교육계에 종사한지 30! 반생이 넘도록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은 열과 성으로 봉사하엿스나 안태 씨를 한번이라도 이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지 못하엿다.

이제 기자는 울산청년회관내에 잇는 울산강습소의 과거를 말함이 여기 부수되어 잇는 울산유치원 문제와 아울러 독지가의 궐기를 바라며 안태로 씨에 대한 세간의 이해를 촉진하는 바이다.

 

<동아일보, 지방문화은인(3), 1939. 1. 21>

 

“5월 첫 공일의 어린이날 행사를 울산청년동맹회관에 천 여명의 어린이들이 모인 가운데 오덕상 씨의 개회사로 식을 마친 후 3, 40개의 어린이의 표어를 쓴 큰 기와 천여개의 작은 기들을 들고 욼읍을 일주한 후 다시 돌아서 기면과자를 분배한 후 안태로 씨의 어린이만세 삼창으로 성대히 식을 마쳣다한다.”

 

<동아일보, 각지 어린이날 소식, 1932.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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