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100주년 울산교육독립운동

병영초등학교

병영초등학교(옛 일신학교, 학성공립보통학교)

 
 
 
 


경상도의 높은 산들이 서쪽에 병풍처럼 우뚝 서 있고동해의 바닷물이 깊숙이 들어와 물산이 풍부하고 살기 좋은 울산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해안가에 사람이 살기 어려워울산만이 바라다보이는 이곳에 낙동강 동쪽을 방어하는 경상좌병영을 설치하여 외침에 대비했다울산은 임진왜란 때 의병의 역사가 자랑스러운 곳이며왜란 때 최대 규모 전투인 울산왜성 전투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1906년 묵은 때를 씻고 새로운 공기를 마셔 도덕을 배양하며 끊어짐이 없게 책임지고 일을 맡아야 한다는 취지로 사립 일신학교를 이곳에 세워 인재를 육성했다1919년 31운동의 만세 소리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때일신학교 졸업생을 중심으로 병영의 청년들이 태극기를 만들고 선언문을 제작하며 4월 첫 장날을 기다렸다일제 헌병 경찰은 4월 2일 언양 장날의 만세 소리에 놀라 4월 3일 병영장이 열리는 것을 막았지만병영 청년들의 독립과 민족자결의 열망을 꺾지 못했다4월 4일 일신학교를 찾아가 후배들과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높이 차는 것을 시작으로 1시간 반 동안 병영 곳곳을 2번이나 누비며 목이 터져라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다음 날에도 이곳을 시작으로 천여 명이 독립 만세와 검거자의 석방을 요구했고일제 경찰의 총격으로 4명이 시위 현장에서 순국했다.

31운동 이후에도 병영은 울산에서 일제의 대경계 대상이었다일신학교 졸업생들과 병영 청년들은 31운동을 가슴에 새기며 기미계를 조직하여 4명 순국의사의 추모제를 지내고병영청년회는 노동운동여성운동소년운동노동야학으로 활동을 넓혔다1926년 5월 1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죽음을 슬퍼하며 3천여 명이 모여 30분간 망곡하고, 2일부터 4일까지 휴학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맹휴학을 단행하여 미야기 교장의 사과를 받아냈다. 6월 10일 오전 9시 병영 사람들은 상점 문을 닫고 수백 명이 이곳에 모여 봉결식을 단행하였다경상좌병영에서 시작하여 사립일신학교학성공립보통학교학성공립심상소학교학성공립국민학교병영국민학교병영초등학교로 이름은 바뀌었지만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나섰던 선배들의 정신은 지금의 우리뿐만 아니라 미래의 후손들에게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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